14일 오후 3시 경북 칠곡군 왜관지구전적기념관에는 시민 수십 명이 길게 줄을 섰다. 지난 12일 차려진 고(故) 백선엽 장군의 분향소에 헌화하려는 행렬이었다.
이날 전북 전주에서 찾아온 50대 여성은 20대 아들과 함께 고인을 향해 분향하고 방명록에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 죄송합니다’라고 적었다. 30대 남성 추모객은 바닥에 엎어질 듯 절을 하고는 10분 가량 일어서지 못하고 흐느꼈다.
고 백선엽 장군에 대한 추모 열기가 전국으로 확산하고 있다. 백 장군이 승리로 이끌었던 6·25 전쟁 최대 격전지로 꼽히는 다부동 전투의 현장인 경북 칠곡뿐만 아니라 전국 각지에서 지역 원로들과 재향군인회가 나서 분향소를 만들고 추모객을 맞이하고 있다.
자유총연맹 칠곡군지회는 지난 12일부터 14일까지 칠곡군 내 왜관지구전적기념관과 다부동 전적기념관 등 2곳에 분향소를 차렸다. 그러자 이른 아침부터 백선엽 장군을 추모하는 주민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14일까지 사흘간 분향소에는 교복을 단정하게 입은 청소년들을 포함해 각계각층 주민들이 분 향소를 찾아 고인의 명복을 빌었다. 이날 미 19지원사령부 스티브 앨런 사령관(준장)을 비롯한 사령부 소속 간부 10명도 분향소를 찾았다. 향토 부대인 칠곡대대 장병 20여명도 찾아와 군의 대선배인 고인을 추모했다.
칠곡군은 사흘간 분향소를 찾은 추모객이 7000여명이라고 밝혔다.
분향소와는 별도로 이장협의회, 방위협의회 등 칠곡군 내 읍면의 주요 사회단체와 보훈단체협의회는 백선엽 장군을 추모하는 현수막 30여개를 군내 곳곳에 내걸었다.
대구 시내에도 달서구 달구벌대로의 향군회관 1층을 비롯, 수성구 두산오거리 인공폭포앞, 7개 재향군인회 구·군지회에 각각 고 백선엽 장군을 추모하는 분향소가 차려졌다.
부산에는 15일부터 시민 분향소가 차려진다.
장혁표 전 부산대 총장, 김계춘 천주교 부산교구 원로신부, 이균태 재부 함안군향우회 회장, 최홍준 전 부산성시화운동본부 이사장, 조금세 학교바로세우기전국연합회 회장, 나영수 새로운 한국을 위한 국민운동 집행위원장 등 지역 원로들이 분향소 설치를 주도했다. ‘6·25 영웅 고 백선 엽 장군 추모 부산시민분향소’는 연제구 연산동 부산시청 2층 정문 앞 광장에 15일 설치돼 18일 오후 8시까지 운영된다.
나 집행위원장은 “지난 12일 서울 분향소를 다녀온 이균태 회장이 ‘제2의 도시, 부산에 왜 분 향소가 없느냐’, ‘나라를 구한 고 백 장군을 그냥 보내서는 안 된다’면서 제안을 해 뜻을 모았다”고 말했다.
이들이 만든 알림 포스터에는 ‘국난의 시기에 나라를 지켜낸 위대한 전쟁 영웅을 기립니다’ ‘대한민국의 역사를 잊지 않겠습니다’ 등의 내용이 담겼다. 이들은 분향소 운영 외에 음악회(15일 저 녁), 6·25전쟁 영화제(16~18일) 등을 열기로 했다.
전국 시도별로는 재향군인회 지회를 중심으로 추모 분향소가 설치됐다. 경기와 인천, 충청, 영남, 호남, 제주 등을 비롯해 일부 시군 단위 재향군인회 사무실에도 분향소가 마련됐다.
분향소에는 안보·보훈단체 회원들과 가족단위 추모객들이 찾아와 헌화와 분향에 참여했다. 일 반 시민들도 재향군인회에 전화를 걸어 “조문하고 싶다”는 뜻을 전하고 직접 분향소를 찾고 있다고 한다.
백 장군을 추모하기 위해 마련된 서울 광화문광장 시민분향소에 다녀간 사람들의 수가 약 4만 5000명이 넘었다. 간간이 떨어지는 빗방울에도 시민들은 분향소 천막이 설치된 세종대왕 동상에서 지하철 5호선 광화문역 출입구까지 약 200m 줄을 늘어서서 추모를 이어갔다.
14일 오전 11시 30분쯤에는 광화문역 9번 출입구까지 방명록에 이름을 쓰고 헌화하려는 추 모객 800여 명이 길게 늘어섰다. 손자 이수호(7)군의 손을 잡고 온 이경휘(65)씨는 “나라를 구한 영웅에게 감사하는 마음으로 왔다”고 했다.
이날 추모객들이 코로나 확산 방지를 위한 발열 체크 후 헌화를 하는 데는 평균 1시간 30분이 걸렸다. 퇴역 군인 단체인 ‘대한민국 수호 예비역 장성단’ 소속 김문화(85)씨는 “나라를 위해 희생한 선배를 존경하는 마음에 왔다”고 했다.
14일까지 사흘째 분향소에서 추모객을 받고 있는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전대협)’ 측은 이날 본지 통화에서 “어제만 2만명이 넘는 시민이 다녀갔다”며 “방명록 쓰신 사람들로 집계를 하고 있는데 오늘 오후 4시까지 약 4만5000명을 돌파했다”고 했다. 전대협은 지난 10일 별세한 백 장군의 장례식이 국민장보다 격이 낮은 육군장으로 치러진다는 소식이 11일 발표되자 그날 밤 광화문 광장에 ‘천막 분향소’를 설치했다.
김수현(31) 전대협 공동의장은 “정부가 (국민장을) 안 하니까 우리라도 대신 영웅을 영웅으로서 예우해 드리고 싶었다”고 했다. 원래 분향소는 이날 오후 9시까지 운영될 예정이었지만, 전대협은 많은 시민이 분향소를 찾고 있어 연장 여부도 논의 중이다.
전대협 관계자는 “할 수만 있으면 49재가 끝날 때까지 운영하고 싶지만, 지금도 ‘불법 점거’라고 서울시에서 경고장을 받는 형편이라 연장은 어려워 보인다”고 했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20/07/14/2020071403714.html